2009년 02월 09일
허지웅씨의 글을 읽다가...
이오공감에 올라 온 허지웅씨의 글을 읽다가 그의 본문과는 하등 상관없는 인물 하나를 기억해 낸다.
아니, 어쩌면 매우 상관있는 인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예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님의 방한 때 그를 일주일간 수행한 적이 있다.
그를 너무도 존경하기에 그 일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 중의 하나였고, 그건 내 개인 역사의 큰 사건이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 속에서 치가 떨리도록 쪽팔리고 수치스러웠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건 바로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모 감독과 조도로프스키(이하, 조도) 감독과의 만남에서였다.
그 감독은 한국영화의 희망으로까지 불리워지는 감독이기도 하고, 그 전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으며,
그 책에서도 존경하는 감독으로 조도 감독을 꼽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약속시간에도 늦었을 뿐더러, 미팅 장소에서도 상당히 거북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뜸 처음에 조도 감독에게 묻는다는 얘기가,
(그 질문이 나올 때는 조도 감독이 그에게 자신이 만든 타로로 점을 봐주고 있을 때였다.)
"제가 헐리웃으로 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리던지......
나중에 안 얘기지만 비단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고,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피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도 감독 역시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조도 감독이 그를 달래기 위해(?) 한 말은 비단 거론하고 싶지 않다.
조도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치스럽게 나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먼저 인터뷰를 했던 이준익 감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 그 후, 나는 그를 쓰레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기억이 허지웅씨의 글 '한국의 닌텐도라는 이름의 욕망'이란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났다.
그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은 일본 감독인 '시미즈 다카시'감독이었다.
그가 부천에서 한국의 영화인들에게 내뱉은 한마디가 폐부 깊숙이 박혔는데, 그 말들이 다시 기어나오게 만들었다.
산업화된 문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수.없.는..일이고, 특히 영화는 자본으로부터 분명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기에 그 폐해는 더 크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아도르노'는 20세기에는(부터는) 문화와 산업을 따로 나눌 수는 없다고 단정지었고,
'현대예술은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했다'고 쓴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독립영화를 하는 놈이지만, 독립영화도 그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 원동력만큼의 수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애처로운 갈구다.
영진위나 여타 지원공모전보다 그건 더 절실한 것이다.
졸라게 노가다해서 돈모아 영화 한 편 찍고 꼬꾸라지는 그런 것들 말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하면서도 계속적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
그건 어쩔 수 없이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난 허지웅씨의 글보다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가보고 싶다.
그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생각이라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다.
이맹박의 발언자체를 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그만큼 문화산업에 대한 마인드가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 무시하면 그만이다.
아니, 어쩜 그건 '문화산업'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식과 행위일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한류라는 신기루도, 문화가 아닌 트렌드였기에 개차반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강제규 감독의 헐리웃 도전기나 몇몇 배우들의 헐리웃 진출기같은 먹잘 것 없는 얘기들도 통용되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맹박만이 아니다.
실제로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가들의 전반적인 의식도 그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그들에게 '문화산업'은 어쩔 수 없는 '산업'이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문화에 더 집착해야 할 의무(?)를 가진 인간들의 행태마저 그런 식으로 쫓아가는 것에 대해선 게거품을 물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모 감독의 행태로 잘 나타난다.
외국 감독에게 한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감독놈이 제일 처음 한다는 말이 헐리웃에 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니?
그의 말이 부천에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한국의 공포영화를 보며 '이젠 나도 지겨워 안만드는 것을 한국에선 왜 지금까지도 울궈먹는지 모르겠다'는 발언과 함께 겹쳐지면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 안에서 잘하면 된다.
잘하고, 헐리웃에서 감히 엄두를 못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지들이 알아서 시미즈 다카시 감독처럼 모셔간다.
돈받으면서 모셔갈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왜 돈써가면서 필요없다는 곳에 기어이 기어 들라고 하는 건지 쪽팔려 죽겠다.
못먹고 살던 시절, 친구의 쭈쭈바 한 입 빨아먹고 싶은 마음에 그 친구놈의 가랭이 사이를 기어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그 아이가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감독의 모습으로 비춰지니 안 쪽팔리곤 못 버티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허지웅씨의 말처럼 이맹박과 문화산업을 주무르는 권력가들의 결과론적인 것만 놓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해야 하는 건, 그들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의무적 행동이다.
영화찍어 돈 벌었으면 그걸 영화에 재투자하고 그래야 하거늘, 이놈들은 지들 뱃가죽 늘리는 일에만 그 돈을 사용한다.
말로만 새로운 컨텐츠,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면서도 그들 스스로가 다양한 의식을 포용할 대가리가 비었으니 그건 아무리 욕하고 설명해줘봐야 말짱도루묵이다.
쇠귀에 경읽느니, 조용히 산사로 들어가 경읽는 것이 경읽어주는 놈이나 소에게나 더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은 딱 하나가 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창작자이고, 예술가고, 과학자고, 닌텐도건 뭐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발명가들들일 것이다.
줄구장창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다.
그래서, 꽉막힌 그네들의 대가리를 열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헐리웃에 기웃거리는 감독이 아니라 누가 뭐래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들이 이 나라에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감독들이 죽을 작정으로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기본이 되어야 한다.
뿌리가 있어야 나무도, 하다못해 이름모를 풀도 자랄 수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더라도 그 뿌리는 문화가 되어야 하지 자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본은 줄기가 되어 영양분을 공급함으로써 꽃과 열매를 맺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허지웅씨의 글에 약간의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의 글이 틀린 글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꽃과 열매가 시들거리면 모든 것의 뿌리를 살펴야지 줄기만 붙잡고 으쌰 으쌰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문화적 부흥은 자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창작자와 그 창작자의 작품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관객들의 의식을 기본 전제로 깔아야 한다.
아무런 힘이 없는 자본은 그런 전제조건을 갉아 먹으며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워낭소리'나 '낮술' 같은 영화들이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누군가 그걸 만들고, 그걸 보고자 하는 관객들이 있다면 자본이라는 멀티플렉스는 언제든 그 자리를 열어주게 되어 있다.
언제든 관객이 원한다면 그걸 볼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자본은 그런 흐름을 철저히 간파하고 자본으로 계산해서 움직일 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객들이 원하고, 자본이 움직이게 할만한 콘텐츠를 가진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할 창작자들이다.
상업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독립영화에서마저 그저 상업영화만을 바라보는 바라기들이 넘쳐나고,
대박 하나 만들면 돈과 명예가 쫓아올 거라 믿고 덤벼드는 불나방들의 잔치판이 된지 오래다.
상업영화에서 구팽당한 떨거지들은 독립영화협회니, 뭐니 하면서 또 지들끼리만의 마스터베이션을 해대고,
뭔소린지 모를 이야기를 풀어대면서 독립영화가 마치 예술영화의 전부인양, 모태인양 씨부렁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히 중간자적인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결국 모든 문제의 원초적인 근원은 문화 그 자체에 있다.
허지웅씨의 글에서 예를 든 일본처럼 나도 일본과 미국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그런 문화를 만드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게 자본이나 권력의 힘으로 조종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 블로그에서 여러번 얘기를 했지만, 검열의 시대에도 비너스의 음부에 조개껍데기를 가리면서도 예술과 문화는 변종을 통한 이상으로의 접근을 시도했다.
어쩌면 검열이나 자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수긍하고 동의하는 창작자들의 의식행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이건, 닌텐도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한국의 닌텐도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이 창작자들에게 있냐는 것이다.
그걸 대충 '싸우라비'라고 하는 게임기라고 명명을 한다면,
닌텐도를 능가하는 싸우라비를 만들면 되고, 이맹박이 한 얘기를 그렇게 이해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멍청한 놈이 그런 생각까지 하겠냐만은 중요한 건 그놈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런 것을 만들어낼 생각이 있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최고의 감독이 헐리웃을 혐오하는 감독 앞에서 헐리웃 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멍청한 질문이나 해대고 있고, 일개 한 감독이 한국에 와서 한국의 영화를 폄하하는 발언을 해도 그 말에 수긍을 해야하는 현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참 절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프로듀싱한 독립영화 'The Butcher'를 해외에 돌릴 때도 해외에서 나온 첫 반응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찍나?'였다.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더우기,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감독에게 한국을 포기하고 해외에 돌릴 거니까 무조건 네가 하고 싶은대로 만들어라'였다.
결국, 그 행위는 뉴욕 한복판에서 허진호의 '사랑'과 이명세 감독의 'M'을 물리치고, 매진사례를 일으키며 불법으로 티셔츠까지 팔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낮술이 미국에서 개봉을 한다고 한다.
우리 영화도 미국에서 개봉을 한다.
그것도 낮술과는 다르게 블록버스터 시즌인 7월에 미국내 준 메이저급 배급사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선 '낮술'과 '워낭소리'에 비해 택도 없는 반응이다.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서운하지도, 투정을 부리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걸 만드는 것 뿐이다.
다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데, 독립영화는 언제든 살아나고, 바퀴벌레처럼 그 생명력이 끈질길 것이다.
결국 살아나고, 관객에게 보여지고, 그토록 원했던 계속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을 획득할 것이다.
그건 관객의 요구와 함께 창작자의 제대로 된 생각이 합쳐져 완벽한 형태를 이루게 될 것이고 말이다.
하이에나의 습성을 가진 자본은 언제나 늘 먹이를 찾아 다닐 뿐이다.
횡설수설하는 글을 여기서 그만 줄이고 결론을 내자면 이렇다.
허지웅씨의 말은 분명 옳다.
우리나라의 갑작스런 현대화의 부작용으로 발생된 천민자본주의의 습성은 자본권력가들의 수준을 한없이 무너뜨렸다.
이맹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에 대해 그 부작용의 최고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놈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것에 대해 열받을 필요는 없다.
그런 놈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우리,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 결국 우리 주위의 사람들 아닌가?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관객은 자꾸 새로운 것을 요구해야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해야 한다.
창작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저 영화 한 편 찍어 돈벌고 명예만 쫓으려는 개새끼들은 제발 좀 "우쥬플리즈~~ 꺼져줄래?"
새로운 문화를 창작자가 만들어내고, 관객이 그걸 요구하면 자본은, 산업은 자연스레 돈을 그곳에다 풀게 되어 있다.
이맹박의 멍청한 말 한마디에 그리 핏대세울 일이 뭐 있냐는 거다.
제패니메이션이 잘나가는 이유는 허지웅씨가 한 거창한 의미도 있지만,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애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컨텐츠와 내러티브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그렇게 형편없는 것에는 대놓고 개무시하면 된다.
그건 관객들의 권리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처럼 이맹박의 말을 무시하면 된다.
어차피 그놈하고 말 안 통한다는 거 맹박산성 쌓을 때부터 답 나왔잖아?
그렇다면 문제제시를 해야 할 대상은 정해져 있고, 그 대상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새로운 것,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줄 모르고 그저 자본권력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침만 흘러대는 창작자들의 무능함을 욕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관객 스스로에 대한 문제제시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문제의 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답은, 진실은 이맹박이 개과천선해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안에 있다.
허지웅씨의 말대로 '한국의 닌텐도'는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대충 이름을 정한 '한국의 싸우라비'는 이상일 수는 있을지언정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싸우라비'는 뭔가?
대답없는 질문은 때려치우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건 우리가 죽는 날까지, 지구가 멈추는 날까지 이맹박이나 정치인 놈들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찾아질 답이 아니다.
추신:
길게 썼지만 쓰다보니 내 마음속의 결론은 이렇다.
낮술도, 워낭소리도 흥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반갑지만, 내 영화도 좀 봐주지~ 라는 아쉬움?!?!
그래도 꼴에 미국에서 티셔츠까지 만들어 팔리고 7월에 정식개봉하는 영환데 한국에선 유료관객 10명은 좀 너무하잖아.... 하는.
영화 잘되면 피디였던 나보다 그 명예와 돈이 다 감독에게 돌아가고,
그 감독놈이 허구헌 날 내 뒷통수를 까대는 걸 생각하면 이런 일들을 해주고 싶지도 않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내가 아니었으면 못만들었을 영화, 내 손으로 만든 내 새낀데 다리에 피가 나더라도 업고 가야지.
..............아마도......
한국에서 게임기나 뭐 여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중소기업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거야.
왜 그렇게 위에만 보냐고,
아래를 보면 우리가 있는데 우리도 좀 보고 말해주지라고.
결국 허지웅씨가 얘기하는 것도 위에 있는 것들만 보고 말하는 거 아니냐고.
그럼 뭐가 다른 건데? 라고...... 참, 씁쓸할거야.
아니, 어쩌면 매우 상관있는 인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예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님의 방한 때 그를 일주일간 수행한 적이 있다.
그를 너무도 존경하기에 그 일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 중의 하나였고, 그건 내 개인 역사의 큰 사건이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 속에서 치가 떨리도록 쪽팔리고 수치스러웠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건 바로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모 감독과 조도로프스키(이하, 조도) 감독과의 만남에서였다.
그 감독은 한국영화의 희망으로까지 불리워지는 감독이기도 하고, 그 전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으며,
그 책에서도 존경하는 감독으로 조도 감독을 꼽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약속시간에도 늦었을 뿐더러, 미팅 장소에서도 상당히 거북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뜸 처음에 조도 감독에게 묻는다는 얘기가,
(그 질문이 나올 때는 조도 감독이 그에게 자신이 만든 타로로 점을 봐주고 있을 때였다.)
"제가 헐리웃으로 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리던지......
나중에 안 얘기지만 비단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고,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피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도 감독 역시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조도 감독이 그를 달래기 위해(?) 한 말은 비단 거론하고 싶지 않다.
조도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치스럽게 나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먼저 인터뷰를 했던 이준익 감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 그 후, 나는 그를 쓰레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기억이 허지웅씨의 글 '한국의 닌텐도라는 이름의 욕망'이란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났다.
그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은 일본 감독인 '시미즈 다카시'감독이었다.
그가 부천에서 한국의 영화인들에게 내뱉은 한마디가 폐부 깊숙이 박혔는데, 그 말들이 다시 기어나오게 만들었다.
산업화된 문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수.없.는..일이고, 특히 영화는 자본으로부터 분명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기에 그 폐해는 더 크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아도르노'는 20세기에는(부터는) 문화와 산업을 따로 나눌 수는 없다고 단정지었고,
'현대예술은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했다'고 쓴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독립영화를 하는 놈이지만, 독립영화도 그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 원동력만큼의 수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애처로운 갈구다.
영진위나 여타 지원공모전보다 그건 더 절실한 것이다.
졸라게 노가다해서 돈모아 영화 한 편 찍고 꼬꾸라지는 그런 것들 말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하면서도 계속적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
그건 어쩔 수 없이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난 허지웅씨의 글보다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가보고 싶다.
그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생각이라는 점을 미리 말하고 싶다.
이맹박의 발언자체를 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그만큼 문화산업에 대한 마인드가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 무시하면 그만이다.
아니, 어쩜 그건 '문화산업'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식과 행위일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한류라는 신기루도, 문화가 아닌 트렌드였기에 개차반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강제규 감독의 헐리웃 도전기나 몇몇 배우들의 헐리웃 진출기같은 먹잘 것 없는 얘기들도 통용되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맹박만이 아니다.
실제로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가들의 전반적인 의식도 그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그들에게 '문화산업'은 어쩔 수 없는 '산업'이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문화에 더 집착해야 할 의무(?)를 가진 인간들의 행태마저 그런 식으로 쫓아가는 것에 대해선 게거품을 물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모 감독의 행태로 잘 나타난다.
외국 감독에게 한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감독놈이 제일 처음 한다는 말이 헐리웃에 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니?
그의 말이 부천에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한국의 공포영화를 보며 '이젠 나도 지겨워 안만드는 것을 한국에선 왜 지금까지도 울궈먹는지 모르겠다'는 발언과 함께 겹쳐지면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 안에서 잘하면 된다.
잘하고, 헐리웃에서 감히 엄두를 못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지들이 알아서 시미즈 다카시 감독처럼 모셔간다.
돈받으면서 모셔갈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왜 돈써가면서 필요없다는 곳에 기어이 기어 들라고 하는 건지 쪽팔려 죽겠다.
못먹고 살던 시절, 친구의 쭈쭈바 한 입 빨아먹고 싶은 마음에 그 친구놈의 가랭이 사이를 기어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그 아이가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감독의 모습으로 비춰지니 안 쪽팔리곤 못 버티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허지웅씨의 말처럼 이맹박과 문화산업을 주무르는 권력가들의 결과론적인 것만 놓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해야 하는 건, 그들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의무적 행동이다.
영화찍어 돈 벌었으면 그걸 영화에 재투자하고 그래야 하거늘, 이놈들은 지들 뱃가죽 늘리는 일에만 그 돈을 사용한다.
말로만 새로운 컨텐츠,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면서도 그들 스스로가 다양한 의식을 포용할 대가리가 비었으니 그건 아무리 욕하고 설명해줘봐야 말짱도루묵이다.
쇠귀에 경읽느니, 조용히 산사로 들어가 경읽는 것이 경읽어주는 놈이나 소에게나 더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은 딱 하나가 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창작자이고, 예술가고, 과학자고, 닌텐도건 뭐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발명가들들일 것이다.
줄구장창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다.
그래서, 꽉막힌 그네들의 대가리를 열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헐리웃에 기웃거리는 감독이 아니라 누가 뭐래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들이 이 나라에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감독들이 죽을 작정으로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기본이 되어야 한다.
뿌리가 있어야 나무도, 하다못해 이름모를 풀도 자랄 수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더라도 그 뿌리는 문화가 되어야 하지 자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본은 줄기가 되어 영양분을 공급함으로써 꽃과 열매를 맺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허지웅씨의 글에 약간의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의 글이 틀린 글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꽃과 열매가 시들거리면 모든 것의 뿌리를 살펴야지 줄기만 붙잡고 으쌰 으쌰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문화적 부흥은 자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창작자와 그 창작자의 작품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관객들의 의식을 기본 전제로 깔아야 한다.
아무런 힘이 없는 자본은 그런 전제조건을 갉아 먹으며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워낭소리'나 '낮술' 같은 영화들이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누군가 그걸 만들고, 그걸 보고자 하는 관객들이 있다면 자본이라는 멀티플렉스는 언제든 그 자리를 열어주게 되어 있다.
언제든 관객이 원한다면 그걸 볼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자본은 그런 흐름을 철저히 간파하고 자본으로 계산해서 움직일 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객들이 원하고, 자본이 움직이게 할만한 콘텐츠를 가진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할 창작자들이다.
상업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독립영화에서마저 그저 상업영화만을 바라보는 바라기들이 넘쳐나고,
대박 하나 만들면 돈과 명예가 쫓아올 거라 믿고 덤벼드는 불나방들의 잔치판이 된지 오래다.
상업영화에서 구팽당한 떨거지들은 독립영화협회니, 뭐니 하면서 또 지들끼리만의 마스터베이션을 해대고,
뭔소린지 모를 이야기를 풀어대면서 독립영화가 마치 예술영화의 전부인양, 모태인양 씨부렁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히 중간자적인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결국 모든 문제의 원초적인 근원은 문화 그 자체에 있다.
허지웅씨의 글에서 예를 든 일본처럼 나도 일본과 미국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그런 문화를 만드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게 자본이나 권력의 힘으로 조종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 블로그에서 여러번 얘기를 했지만, 검열의 시대에도 비너스의 음부에 조개껍데기를 가리면서도 예술과 문화는 변종을 통한 이상으로의 접근을 시도했다.
어쩌면 검열이나 자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수긍하고 동의하는 창작자들의 의식행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이건, 닌텐도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한국의 닌텐도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이 창작자들에게 있냐는 것이다.
그걸 대충 '싸우라비'라고 하는 게임기라고 명명을 한다면,
닌텐도를 능가하는 싸우라비를 만들면 되고, 이맹박이 한 얘기를 그렇게 이해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멍청한 놈이 그런 생각까지 하겠냐만은 중요한 건 그놈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런 것을 만들어낼 생각이 있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최고의 감독이 헐리웃을 혐오하는 감독 앞에서 헐리웃 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멍청한 질문이나 해대고 있고, 일개 한 감독이 한국에 와서 한국의 영화를 폄하하는 발언을 해도 그 말에 수긍을 해야하는 현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참 절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프로듀싱한 독립영화 'The Butcher'를 해외에 돌릴 때도 해외에서 나온 첫 반응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찍나?'였다.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더우기,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감독에게 한국을 포기하고 해외에 돌릴 거니까 무조건 네가 하고 싶은대로 만들어라'였다.
결국, 그 행위는 뉴욕 한복판에서 허진호의 '사랑'과 이명세 감독의 'M'을 물리치고, 매진사례를 일으키며 불법으로 티셔츠까지 팔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낮술이 미국에서 개봉을 한다고 한다.
우리 영화도 미국에서 개봉을 한다.
그것도 낮술과는 다르게 블록버스터 시즌인 7월에 미국내 준 메이저급 배급사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선 '낮술'과 '워낭소리'에 비해 택도 없는 반응이다.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서운하지도, 투정을 부리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걸 만드는 것 뿐이다.
다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데, 독립영화는 언제든 살아나고, 바퀴벌레처럼 그 생명력이 끈질길 것이다.
결국 살아나고, 관객에게 보여지고, 그토록 원했던 계속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을 획득할 것이다.
그건 관객의 요구와 함께 창작자의 제대로 된 생각이 합쳐져 완벽한 형태를 이루게 될 것이고 말이다.
하이에나의 습성을 가진 자본은 언제나 늘 먹이를 찾아 다닐 뿐이다.
횡설수설하는 글을 여기서 그만 줄이고 결론을 내자면 이렇다.
허지웅씨의 말은 분명 옳다.
우리나라의 갑작스런 현대화의 부작용으로 발생된 천민자본주의의 습성은 자본권력가들의 수준을 한없이 무너뜨렸다.
이맹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에 대해 그 부작용의 최고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놈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것에 대해 열받을 필요는 없다.
그런 놈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우리,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 결국 우리 주위의 사람들 아닌가?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관객은 자꾸 새로운 것을 요구해야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해야 한다.
창작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저 영화 한 편 찍어 돈벌고 명예만 쫓으려는 개새끼들은 제발 좀 "우쥬플리즈~~ 꺼져줄래?"
새로운 문화를 창작자가 만들어내고, 관객이 그걸 요구하면 자본은, 산업은 자연스레 돈을 그곳에다 풀게 되어 있다.
이맹박의 멍청한 말 한마디에 그리 핏대세울 일이 뭐 있냐는 거다.
제패니메이션이 잘나가는 이유는 허지웅씨가 한 거창한 의미도 있지만,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애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컨텐츠와 내러티브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그렇게 형편없는 것에는 대놓고 개무시하면 된다.
그건 관객들의 권리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처럼 이맹박의 말을 무시하면 된다.
어차피 그놈하고 말 안 통한다는 거 맹박산성 쌓을 때부터 답 나왔잖아?
그렇다면 문제제시를 해야 할 대상은 정해져 있고, 그 대상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새로운 것,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줄 모르고 그저 자본권력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침만 흘러대는 창작자들의 무능함을 욕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관객 스스로에 대한 문제제시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문제의 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답은, 진실은 이맹박이 개과천선해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안에 있다.
허지웅씨의 말대로 '한국의 닌텐도'는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대충 이름을 정한 '한국의 싸우라비'는 이상일 수는 있을지언정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싸우라비'는 뭔가?
대답없는 질문은 때려치우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건 우리가 죽는 날까지, 지구가 멈추는 날까지 이맹박이나 정치인 놈들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찾아질 답이 아니다.
추신:
길게 썼지만 쓰다보니 내 마음속의 결론은 이렇다.
낮술도, 워낭소리도 흥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반갑지만, 내 영화도 좀 봐주지~ 라는 아쉬움?!?!
그래도 꼴에 미국에서 티셔츠까지 만들어 팔리고 7월에 정식개봉하는 영환데 한국에선 유료관객 10명은 좀 너무하잖아.... 하는.
영화 잘되면 피디였던 나보다 그 명예와 돈이 다 감독에게 돌아가고,
그 감독놈이 허구헌 날 내 뒷통수를 까대는 걸 생각하면 이런 일들을 해주고 싶지도 않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내가 아니었으면 못만들었을 영화, 내 손으로 만든 내 새낀데 다리에 피가 나더라도 업고 가야지.
..............아마도......
한국에서 게임기나 뭐 여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중소기업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거야.
왜 그렇게 위에만 보냐고,
아래를 보면 우리가 있는데 우리도 좀 보고 말해주지라고.
결국 허지웅씨가 얘기하는 것도 위에 있는 것들만 보고 말하는 거 아니냐고.
그럼 뭐가 다른 건데? 라고...... 참, 씁쓸할거야.
# by | 2009/02/09 16:27 | ...잡설 雜說...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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